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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생애와 작품 > 생애 > 헤르만 헤세의 생애와 작품 - 이영임(연세대)

생애

헤르만 해세의 삶과 작품세계-이영임(연세대)

"운명과 심성은 이름이 다를 뿐이지 같은 개념이다." 헤세가 즐겨 인용했던 시인 노발리스의 말이다. 그럴 기회가 드물긴 하지만 어쩌다 주위 가까운 이들의 삶을 전체로 조망해 보면 이 말에 들어 있는 필연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삶이란 외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심성이나 기질이 반응함으로써 이어지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외적인 조건이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같거나 비슷한 조건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며 나름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그 심성이나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니, 운명과 심성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노발리스가 이야기하는 이 운명과 심성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우리는 헤세의 삶과 작품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헤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동시에 조망하게 되면 기질 면에서 그의 삶을 굵은 선으로 관통하고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집어낼 수 있고, 이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외부 조건들에 반응하며 나무의 나이테가 차오르듯 그의 삶과 작품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헤세가 지닌 심성의 특징으로는 무엇보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고집과 선교사 집안의 혈통으로 전해 내려온 천성의 경건함과 그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상상력 풍부한 지적 자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그의 삶에서 일찌감치 어린 시절부터 그 윤곽을 드러낸다. 일찍이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훗날 신학자나 목사가 되기 위해 어렵기로 소문난 뷔르템베르크 주의 장학생 선발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해 마울브론 수도원의 신학생이 되지만, 개성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틀에 박힌 신학교 생활을 못견뎌 거기서 도망쳐버린다. 얼른 보기에 그저 학교에서 도망친 것에 불과한 열네 살짜리 소년의 이 행동은 그러나 그의 그 후의 삶의 여정 내지 작품세계와 연계지어 살펴보게 되면, 이미 징조가 뚜렷한 하나의 싹을 내보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어린 영혼이라 해도 내심으로부터 충분히 수긍하고 동의할 수 없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는 그것이 다수를 상대로 한 것이든, 전통을 상대로 한 것이든, 후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분연히 들고일어서는 대단한 고집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비슷한 고집을 우리는 독일이 전쟁의 흥분과 도취로 빠져들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 기간에 헤세가 취했던 단호한 태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인도주의와 평화를 주장하던 헤세는 주위의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을 혼자서 해나간다. 무력으로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욕망에 도취된 동포를 상대로 국내외의 신문, 잡지에 그래서는 안된다는 글들을 발표하고 평화를 외치다가 민족의 배반자로 낙인 찍히고, 이 일은 첫 번째 부인의 우울증으로 인한 입원과 가족의 해체 등 다른 요인들과 겹쳐 스스로 정신분석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깊은 심적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군대에서 심한 근시 때문에 후방에 배속되자 <독일포로 후생사업소>에 근무하며 외국에 잡혀 있는 독일군 포로들에게 읽을 책들을 마련해 보내주고, 그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 부치며, 독일 전쟁포로들을 위한 출판사를 설립해 1918-1919년 사이 22권의 책을 출판해 내는 것이다. 또 1930년대 초반부터는 히틀러의 집권과 나치세력의 확장, 그 전횡을 지켜보면서 20세기 문화와 정신현상 전체를 문제삼고 그 극복의 방안을 모색하는 긴 작업에 착수한다. 1차 대전 때의 아픈 체험을 거울로 삼아 투쟁의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1932년에 시작해 10년 걸려 1942년에 탈고한, 그의 작가로서의 생을 총결산하는 작품 "유리알 유희"는 이렇게 씌어진 것이며, 그 사이 1939년부터 제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헤세의 작품들은 독일에서 출판금지가 된다.

밖으로 드러난 이러한 행동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교사 집안에서 자라나 그 부모가 신학자나 목사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아들이 "데미안Demian"에서 2천년 전통의 기독교 가치관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쯤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이 시인의 세 가지 두드러진 기질, 즉 그의 고집과 경건함, 매인 곳 없는 지적 자질이 어떻게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그의 인성과 작가로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의 기질의 세 가지 특성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 까닭은 우선 그의 굽히지 않는 고집이 바로 그의 타고난 경건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다만 헤세의 경우 그 경건함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외부의 가치기준이나 규범에 맞추어져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로, 가장 깊은 마음의 근원으로 향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이데올로기에는(정치, 사회, 문화, 종교,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구속과 경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는 그런 제한이 있을리 없으니, 그 마음에 가장 충실하고자 하는 인간에게 그의 지적 상상력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분야가 열려 있음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렇게 볼 때, 외할아버지인 언어학자 헤르만 군데르트를 비롯해 부모가 모두 인도에서 선교생활을 한 배경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헤세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동서양의 그 막대한 정신 유산들을 섭렵하며 자신을 비롯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헤세는 서양의 고전들은 물론이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찍부터 고대 인도와 중국의 고전들을 접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은 글들을 남기고 있다. 그 중에는 인도의 영웅서사시 "길가메쉬", Leopold Schr der가 해설한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글, Helmut v. Glasenapp이 쓴 "힌두교"라는 책에 대한 서평, 베단타 철학 "우파니샤드"와 Karl Eugen Neumann이 번역한 "부처의 말씀", Hermann Oldenberg의 불경번역 "미래의 종교"에 대한 서평 등이 1970년 Suhrkamp 출판사에서 나온 12권으로 된 전집 중 제 12권에 실려 있다. 같은 책에 고대 중국의 고전을 소개하는 글들로 1909년 공자의 "논어"를 소개하는 글을 비롯해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말씀과 비유", "여불위의 춘추", "역경", 중국 禪불교의 고전인 "벽암록"과 중국의 민간 동화와 설화 등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고, 그 외에도 헤세의 다른 글들에는 그가 "맹자"와 "시경", 이태백과 두보의 시들과 전기, 동양문화권의 다양한 서적들을 읽었고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심성과 기질로 인해 그의 생은 이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도망쳤을 때부터 다수에 묻혀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권으로부터는 일찌감치 빠져 나왔던 것이고, 자신의 힘으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가도록 정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헤세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탑시계 공장의 견습공, 서점의 조수, 점원 등 엘리트 코스에 들어서 본 일이 있는 수재에게는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을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는 제도권 안의 정규교육을 거친 어느 누구도 필적할 수 없으리만큼 독학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쌓아올렸고, 치열하고 가차없는 자기 탐구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그 어느 성직자 못지않게 전세계 사람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 전통의 가치 기반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안이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또 그를 조국의 배반자로 몰았던 독일에게는 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의 한 사람으로서 그 민족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 심성과 기질은 헤세 작품의 주인공들에게서도 그 양상이 다르지 않다. 라우셔, 카멘친트, 싱클레어, 싯다르타, 클링조어, 하리 할러, 골트문트, H. H., 크네히트, 이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듯하면서도 한 겹 너머 그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면 헤세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그 근저에 "놀랄만한 일관성"이 흐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가기 다른 상황과 문제들에 처해 있다곤 해도 그들은 모두 심성이 진실하고 경건하며 무엇엔가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문제는 그들의 경건함이 그들을 어디로, 무엇에 자신을 바치도록 이끌어 갔는가 하는 점이다. 외부 세계의 요구와 내면의 부름 사이에 섰을 때 서슴없이 택하는 쪽은 언제나 내면의 목소리고, 또 그들이 하나같이 제도권 안의 인물이 아니라, 기존 가치규범의 체제 밖으로 튕겨져 나와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감으로써 궁극에는 그 기존의 체제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 그 완성을 향해 일조를 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공통점에는 헤세가 그의 삶과 작품을 통해 평생을 두고 믿고 주장해 온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신조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현실이 완벽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불완전한 현실은 이상을 향해 끝없이 개선되고 개혁이 되어야 하지만, 개인이든 사회든 진정한 개혁이란 외부로부터 요구되고 주어지는 어떤 것에 맹목적으로 따라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주체의 내부로부터 절실한 것으로서 자라나왔을 때 가능한 것이니, 행동 이전에 누구든 무엇이 왜 중요한지를 먼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그러므로 우선 철저히 자기 자신을 알고, 주체적으로 그 자신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자기 인식Selbsterkenntnis"과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sproze "을 끝까지 거친 다음에라야 비로소 그가 속한 사회에도, 그 사회의 변혁에도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가 결코 남을 이해할 수 없으며,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무엇이 왜 중요한가를 짐작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중심도 없이 모여본들 그 집단은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무리에 불과할 뿐 참다운 일은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데 여기서 한 가지 헤세가 지닌 경건함의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아주 일찍부터 생에는 항상 모든 대립을 넘어선 어떤 궁극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그 궁극적인 것의 무한한 조화에 대한 강한 예감을 평생토록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년에 쓴 후기 산문들 중의 하나인 '두 개의 동화가 있는 성탄 전야'에서 그는 이 예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양초와 꿀향기 가득하던, 아직 행복하고 파괴로부터 안전해 보이며, 파괴의 가능성조차 믿지 않았던 그 어린 시절의 성탄 축제로부터 시대와 더불어 개인의 삶에도 덮쳐 오는 그 모든 변화와 위기, 격앙, 회고로 점철된 인생의 장을 거치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겐 하나의 핵심, 의미, 은총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어느 교회나 학문의 도그마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중심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위기를 맞고 어지럽혀진 삶은 언제나 새로이 정돈될 수 있고,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이 내면의 핵심으로부터 신에게 이를 수 있다는 믿음, 이 중심이 신의 현존과 일치한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신이 있는 곳에서는 추하고 일견 의미없어 보이는 것도 견딜 수가 있으니, 신에게는 그 어디에서도 현상과 의미가 분리되지 않고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헤세와 그의 주인공들이 현실과 작품 속에서 찾아 헤매었던 것이 결국 이 자아와 신이 만나는 자리, 모든 인간의 내부에 있다고 믿는 그 완벽한 조화의 "핵심Kern"이었고, 그러다보니 그들이 걷는 길은 항상 구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런 자각에서 무리없이 설명이 된다. 또한 이 마음의 중심은 헤세의 경우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 체험하고 습득하는 모든 것을 한 곳으로 수렴시키고 있으니, 이 "핵심"이 확인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거듭 저 서구 기독교문화의 "경건주의적 신비주의pietistische Mystizismus"와 동양의 불교적, 도교적, 유교적 색채가 한데 어우러진 헤세의 "양극적 단일사상Gedanke der polaren Einheit"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삶과 사물에 내재하는 이치를 깨닫고 각성하는 저 "마술적 체험das magische Erlebnis"의 순간, 그의 주인공들은 이제까지 그들을 괴롭혀 온 생의 모든 대립이 화해불능의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긴 해도 그것들이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본질에 속한 불가분의 상대적 양면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헤세 자신은 그 스스로 믿고 체험한 이 내면의 "핵심"에서 저 마이스터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나 야콥 뵈메Jakob B hme의 신비주의적 언급들, 佛家에서 말하는 不二의 깨달음, 유가에서 가르치는 중용의 덕, 도가에서 말하는 도 등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하나의 중심을 돌고 있음을 직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핵심"을 향해 내면으로의 순례에 들어선 주인공이 일단 일반의 획일화된 상식으로부터 벗어나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저 "개성화 과정"의 끝에 이르러 신성한 중심에 닿게 되면, 그 다음에는 더 이상 이기적인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화된 자신을 의미있게 실현시키기 위한 "헌신Selbstaufopferung"과 "탈개인화Entpers nlichung"로 방향을 바꾸고 자연스레 그가 이탈해 나온 사회로 복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온 개인은 자신과 타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개성화"해보지 않은 인간은 그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자아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그 자아를 포기할 수도 없어 한정된 좁은 세계에 갇히게 되지만,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그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통해 자신을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을 타인을 통찰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헤세적 경건함의 비밀, 그 경건함이 고집스럽게 찾아내려간 "핵심"의 역설적 조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대립에 숨겨진 마지막 의미는 대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립된 요소들의 흐트릴 수 없는 균형과 조화에 있다는 것, 알 수 없는 우리 내부의 신적인 요소는 한쪽으로 치달아 간 꼭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채우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개인과 사회라는 대립의 견지에서 볼 때 한 인간의 "개성화"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다만 더불어 사는 삶에서의 "자기 실현Selbstverwirklichung"을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전제조건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추구해야 할 개인의 목적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의미있게 사용하느냐 하는 일이지만, 그 "자기 실현"이야말로 진정으로 주체화된 "개성Pers nlichkeit"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그 절정을 이루며 표현되고 있는 "유리알 유희"의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의 경우를 두고 작가는 익명의 연대기 작가인 소설의 화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란 개인의 향기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강하고도 신선하며 놀랄 만한 충동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질과 교육에 의해 자신의 개성을 종단 계급사회에서의 그의 기능에 거의 완벽하게 동화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 뿐이다. 그리고 개인과 종단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는 이 충돌이야말로 한 인격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의 개성이 그 본질상 통일을 요구하는 집단의 획일성에 의해 말살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그 집단에 속해 필요불가결의 일원으로 완벽하게 기능해야 하며, 그 개인의 개성과 집단의 의지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는 그 갈등을 풀어내는 역량을 보고 인격의 크기를 잰다? 어려운 요구이고 주문이지만 이는 또한 우리들 모두에게 주어진 생의 과제가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삶의 그 수많은 대립되는 가치와 요구들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기울지 않게, 양쪽 모두를 위해서 최선의 조화로운 결과를 유도해내느냐 하는 처세의 방정식이요 지혜로운 삶의 연주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까지의 헤세 작품들이 앞에서 말한 내면의 "핵심"을 확인하고 그 진정한 모습을 그려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후기로 갈수록 시인의 마음을 끄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 "핵심"에 지속적인 접속을 유지하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며 그 완벽하게 균형잡힌 중심의 조화를 현실 속에 실현해내는가 하는 문제였다.

일상의 현실을 벗어나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아침"을 향해, "빛의 고향"으로 떠나는 "동방순례Pilgerfahrt nach dem Morgenlande"나 "초시간적인 가치와 형식들에의 빠른 회상, 정신의 여러 영역들을 꿰뚫어 나는 노련한 짧은 비행"이라고 묘사되고 있는 "유리알 유희"는 사실 작가의 온갖 상상력과 비유를 동원한 문학적 형상화의 작업을 생략하고 엄밀히 그 실체만을 보자면, 헤세 스스로가 그의 일상의 삶 속에서 행하던 사색과 성찰의 성격을 띤 "사유의 유희Gedankenspiel"였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스위스 테씬의 산간 마을 몬타뇰라의 정원에서 낙엽을 태우고 화단에 쓸 재섞인 거름흙을 만들고 하는 시간들이 노시인에게는 자연을 접한 상태에서의 명상과 사색의 시간들이었고, 흙을 만지는 그 소박한 작업이 행해지는 동안 그의 머리 속에선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개인적, 시대적 문제들과 함께 인류 문화가 일구어 놓은 정신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추상의 유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우리는 1935년 7월에 쓴 헤세의 시 '정원에서의 시간들Stunden im Garten'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쉬면서, 그러나 전혀 무료하지 않게

땅바닥에 무릎을 고이고 앉아

두 손으로 살며시 둥글림이 아름다운 체를

먼젓번 낙엽불들에서 나온 재로 채우고

거기에 흙더미 밑에서 끌어낸

오래되고 온기있게 촉촉한,

발효하고 썩어 무르게 된 흙을 섞어

그 성긴 혼합물을

체반 밑에 아주 고운 재 같은 흙의 작은 원추가 생겨나도록

천천히 흔든다. 그리곤 뜻하지 않게

그렇게 흔드는 가운데 확실하고 고른 박자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 박자 속에서 되살아 나오는

지치지 않는 기억

하나의 음악, 나는 그것을 함께 흥얼거린다.

그 곡과 작곡자의 이름을 아직 모르는 채,

그리고 갑자기 알게 된다. 모차르트의 곡임을

오보에가 있는 사중주인가...

그리고 이제 심정 속에선

벌써 몇 년째 마음을 기울여 온

사유의 유희가 시작된다.

유리알 유희라고 불리는,

구조는 음악이고

근본은 명상인

훌륭한 착안이.

요제프 크네히트는<

내가 이 멋진 상상으로 인해

덕을 입고 있는 명인.<

즐거운 세월에

그것은 내게 유희이고 행복이며,

고난과 혼란의 시기에

그것은 내게 위안이고 사색이니,

여기 불가에서 체를 치며

나는 자주 연주한다 유리알 유희를,

비록 이제까지는 크네히트처럼은 아니었지만.

[...]

유리알 유희의 정체가 이렇게 명상을 곁들인 사색과 성찰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은 그럼 이 시인이 세계사 전체를 통해 가장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일들이 그의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안 10년간이나 노년의 모든 힘을 쏟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 "사유의 유희"를 실재하는 어떤 것인 양 그려냈던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헤세가 그의 소설에서 한마디로 "잡문시대das feuilletonistische Zeitalter"라고 부르고 있는 20세기의 퇴락한 정신문화 속에서 그 방향을 건강한 쪽으로 돌려놓게 위해서는 어떻게든 개개인의 삶 속에 불러일어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 "영혼의 훈련eine seelische Zucht"내지 "정신수양의 집중된 자신감konzentriertes Selbstgef hl einer Geisteszucht"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가 평생을 믿어왔듯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개혁도 우선은 개인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으므로.

물론 이 "영혼의 훈련" 내지 "정신수양"은 저 내면의 "핵심"에, 그 완벽한 조화와 균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느 경우든 제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으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는 법이고, 목표가 분명하면 그 다음에는 인내심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니, 유리알 유희의 정신이란 바꾸어 말하자면 그 "핵심"을 찾아가는 길, 즉 근원적인 것을 향한 삶의 자세나 마음 가누는 법을 정립하려는 것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 평생을 쌓아온 헤세의 노년의 지혜 그 자체이자 유리알 유희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비로운 인물 "음악의 노대가der Altmusikmeister"는 소설 속에서 그의 제자이자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완벽하게 연주된 유리알 유희라고도 할 수 있는 크네히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희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분명하지.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유희를 사랑하는 것이다. 위험이 없는 길로는 약한 자나 내보내는 법이니까. 그러나 내가 그토록 여러 번 말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네. 우리의 운명은 대립을 옳게 인식하는 일이야. 우선은 대립으로서, 그러나 그 다음에는 단일의 양극으로서 말이지. 이 점은 유리알 유희에서도 마찬가지라네. 예술가 기질을 가진 사람은 유리알 유희를 좋아하지. 그 안에서 공상을 할 수 있으니까. 엄격한 학자들은 이 유희를 경멸하네, --음악가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은데--거기엔 개개의 학문이 도달할 수 있는 저 엄격한 규율이 빠져있기 때문이지. 자네도 이 대립을 알게 될 테고, 시간이 가면 그것이 객관적인 대립이 아니라 주관적인 대립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야. 예를 들어 공상을 즐기는 예술가가 순수 수학이나 논리학을 기피하는 것은 그가 그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말할 수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다른 데로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지. 자네도 그렇게 본능적으로 격렬하게 좋고 싫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하찮은 영혼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네. 사실, 위대한 영혼이나 탁월한 정신들에는 이런한 격정이 없지. 우리는 모두 그저 인간일 뿐이고, 각자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렇지만 그 인간은 완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어야 해. 중심을 향해 노력해 가야지 가장자리로 빠져 나가려 해서는 안되네. 알아두게. 엄격한 논리학자나 문법학자이면서도 동시에 공상이나 음악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음악가나 유리알 유희의 연주자이면서도 온전히 법칙과 질서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그렇게 되려 하는 인간이란 언제라도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유리알 유희 속에 가장 명쾌한 논리를, 문법 속에 가장 창조적인 환상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 우리는 어느 때 어느 자리에 놓이더라도 그에 저항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네.

[...] 무엇에든 유능하고 모든 것에 공정하게 되려면 분명 정신력이나 활기, 열정에 있어서도 마이너스 아닌 플러스가 요구되지. 자네가 정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력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세계 사이의 마찰일 뿐이야. 격정이 우세하게 되면 욕구하고 추구하는 힘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뿔뿔이 흩어진 잘못된 목표를 향해 있기 때문에 긴장과 숨막히는 분위기가 형성될 뿐이지. 욕망의 추진력을 극도로 집중시켜 중심으로, 참된 존재로, 완전으로 향하도록 해놓은 사람은 격정적인 사람보다 평온해 보이게 마련이니, 그에게선 좀처럼 열정의 불꽃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네.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은 논쟁을 하더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의 내면은 뜨겁게 타고 있지! [...]

진리는 분명 있지.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오로지 그것만으로 현명하게 되는 그런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네.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만 하네. 신성(神性)은 개념과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속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네. 싸울 각오를 하게나, 요제프 크네히트, 보아하니 투쟁은 벌써 시작되었네.

이러한 개념들이 딱딱한 설명을 넘어서서아름답고 완벽하게 연주된 한 편의 푸가 형식으로 그려진 것이 바로 요제프 크네히트의 일생이다. 그의 삶이 각 단계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생의 대립되는 요소들인 정신과 자연, 개인과 사회, 규칙과 자유, 스승과 제자, 늙음과 젊음, 봉사와 지배, 삶과 죽음 등이 서로 대비되고 어울리며 흐트러짐 없이 균형을 잡고 궁극의 조화를 향해 고른 박자로 진행되어가는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대립쌍들의 어느 것 하나도 한쪽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립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한 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 쪽은 자동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헤세의 생애와 작품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이 한 가지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발전시켜 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모든 주인공들이 그렇듯, 작가 또한 평생동안 스스로를 아낌없이 바쳐 봉사하는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가 주위에 온갖 충돌과 갈등을 감수하며 그리도 고집스러운 경건함을 가지고 몰두해 갔던 대상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고, 그를 이끌고 지배한 최고의 주인은 결국 그가 모든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저 신적인 "핵심"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일생을 바쳐 그 "핵심"을 찾아 구도의 길을 갔던 노시인이 인류에게 들려 주는 마지막 지혜는 그가 "고전음악의 자세"라고 불렀던 다음과 같은 "삶의 태도" 속에 드러난다.

인간 존재의 비극을 아는 것,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는 것, 용감함, 청랑함! 그것이 헨델이나 쿠페렝의 미뉴에트에 드러나는 우아함이든, 많은 이탈리아 작곡가나모차르트에게서 볼 수 있는 승화된 감각성의 사랑어린 자태이든, 또는 바하에게서 나타나는 조용하고 침착한 죽음에의 각오이든 상관없이, 거기엔 언제나 불굴의 의지, 죽음을 무릅쓴 용기, 기사도 정신, 초인적인 웃음소리와 불멸의 청랑함이 울리고 있다. 우리의 유리알 유희에도, 우리의 삶과 행위와 고뇌에도 그런 울림이 깃들어야 한다.

1945년에 쓴 '즐겨 읽는 책들'이라는 글에서 헤세는 그가 동양의 위대한 스승 공자에게서 이 같은, 세속의 자로 잴 수 없는 정신의 위대함을 읽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노자의 위대한 상대역, 체계를 세우는 사람, 도덕가, 입법가, 관습의 수호자, 고대 현자들 중 유일하게 장중한 구석이 있는 인물 공자는 이따금 이렇게 특징지어지곤 한다. "이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데도 실행에 옮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라고. 내가 그 어느 문헌에서도 비슷한 예를 보지 못한 그 초연함과 유머, 소박함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끔 나는 이 말과 다른 구절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거나, 요 몇 년 혹은 몇 십 년 안에 세상을 바로 잡거나 완전하게 만들겠다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저 위인(偉人) 공자와 마찬가지로 행동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행동 뒤에는 공자가 알고 있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가 빠져 있는 것이다.